진 크레이즈(Gin Craze)

bangmang_monster · 2026-09-01 · 조회 5

18세기 초 런던에서 벌어진 진 크레이즈(Gin Craze)는 인류 음주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도시 전체가 진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이 시기는, 알코올이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진 크레이즈의 배경에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
1688년 네덜란드 출신의 윌리엄 3세가 영국 왕이 되면서, 프랑스산 브랜디 수입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대신 곡물 증류주(진) 생산을 장려했다.
프랑스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목적이었는데, 부수 효과로 누구나 허가 없이 진을 만들고 팔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런던의 빈민가에서 진이 물보다 싸게 팔렸다.
당시 유명한 진 가게 문구가 있는데, 1페니면 취하고, 2페니면 곯아떨어지고, 짚바닥은 공짜(Drunk for a penny, dead drunk for twopence, clean straw for nothing)라는 것이었다.
1733년경 런던의 연간 진 소비량은 1인당 약 14갤런(약 64리터)에 달했다는 추정도 있다.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영국 의회가 여러 차례 진 규제법(Gin Act)을 통과시켰다.
1736년의 법은 사실상 진 판매를 금지하려 했으나 암시장만 키웠다.
1751년의 법이 비교적 효과적이었는데, 소매 판매 면허 요건을 강화하고 증류소가 직접 소매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진 크레이즈가 진정된 것은 법적 규제와 함께 곡물 가격 상승, 경제 상황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 시기의 교훈은 이후 영국의 주류 정책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판화 Gin Lane(1751)은 진 크레이즈의 참상을 묘사한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이다.
아기를 떨어뜨리는 취한 어머니, 폐허가 된 거리, 자살하는 사람 등 충격적인 장면들이 담겨 있다.

TMI: 진 크레이즈 이전에 영국인이 즐겨 마시던 술은 에일(맥주)이었다.
호가스는 Gin Lane과 대조적으로 Beer Street이라는 판화도 그렸는데, 맥주를 마시는 건강하고 행복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맥주는 좋은 술, 진은 나쁜 술이라는 메시지였다.